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다

열 아홉의 어린 나이에 장원 급제를 하여 스무 살에
파주 군수가 된 맹사성은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무명 선사를 찾아가 물었다

"스님이 생각하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내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그러자 무명 선사가 대답했다. "그건 어렵지 않지요.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

"그런 건 삼척 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먼 길을 온 내게 해 줄 말이 고작 그것 뿐이오"

맹사성은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무명 선사가 녹차나 한 잔  하고 가라고 말하였다

그는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스님은 차의 물이 넘치도록 그의
찻잔에 자꾸만 차를  따르는 것이 아닌가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망칩니다"

맹사성이 소리쳤다. 하지만 스님은 태연하게
계속 찻잔이 넘치도록 차를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는 잔뜩 화가 나 있는
맹사성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스님의 이 한마디에 맹사성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졌고 황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에 이마를 세게 부딪히고 말았다.
그러자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습니다."


물이 하늘에 다가서는 의식이 물 안개라면
산이 하늘에 다가서는 의식이 산 안개입니다
물도 산도 생명을 품고 있습니다

그들이 품고 있는 생명이 하늘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읽었기 때문에 하늘을 오릅니다

희망이 하늘과 같이 높은데 있고 꿈이 하늘과 같이
높은데 있어 살아 있는 생명은 하늘을 꿈 꿉니다

살아 있어도 꿈이 없다면 안개 구름입니다
안개에 가린 당신과 나의 거리를 좁혀 봅시다
살아 있음을 공유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