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린도 후서 6:9~10)
어느 달동네 꼭대기 쯤에 나이 많으신 할머니 한분이 사셨습니다.
지독하게 가난하고 보듬어 줄 사람도 없지만 할머니는 늘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삶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그런데 그 할머니의 아름다운 믿음에 대한 소문은 달동네 마을은 물론. 지역 전체로 퍼지기 시작 했습니다.
할머니에 대한 소문을 들은 지역 목사님들이 모여 그 할머니를 방문하여 어떻게 그렇게 충만하게 사시는 가를 알아 보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목사님들이 할머니에게 필요한 이것 저것을 준비하여 할머니가 사시는 곳을 찾아 갔습니다.
마침, 할머니는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찬송을 흥얼 거리시며 손 빨래를 하시고 계셨습니다.
목사님 중에 한분이 물었습니다."할머니! 할머니는 뭐가 그렇게 감사하고 행복하세요.?
"혹시 예수님이 다녀 가시기 라도 하셨나요?" 할머니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게 아니라는 뜻이었습니다. 목사님들이 할머니께서 잘 못 들으셨는가 해서 재차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할머니! 예수님이 다녀 가셔서 그렇게 좋으신 거예요? "그러자 할머니는 허리를 펴시고 일어 서시며 아니야, 예수님이 다녀 가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지금 나와 함께 살고 계셔! " 목사님들은 그제야 할머니가 그렇게도 최악의 상황속에서도 감사하며 충만하게 사시는 이유를 알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앎이 아니라 삶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하여 알고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에 대하여 많이 말한다고 하여 잘 믿는 것은 아닙니다.
앎과 삶은 비례 하지 않습니다. 지금 많이 힘드시고. 많이 낙심이 되고, 많이 죽고 싶을 정도로 어려우십니까?
혹시 주님과 별거 중은 아니신지요? 반대로 예수님은 생각만 해도 기절할 정도로 좋고 신나고 행복하십니까?
그렇다면 상황이야 어떻든 주님이 당신속에 살고 계신 중입니다. 주님의 관심은 앎보다 삶이며. 일보다 관계이며 모든 인류보다 당신의 영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앎으로 충만한 1000명보다 달동네 할머니 한분을 더 애타게 찾고 계실 것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사시므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할 정도의 영성과 믿음이라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들 어찌 찬양 안할 수 있습니까?
그분으로 인하여 최고의 부자이니까요. 할렐루야!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세상의 많은 것들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견주지 않게 하 옵소서.
혹시나 행여 견주게 되어도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선택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 옵소서.
저희의 삶이 오직 주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찬양하며 자족하고 감사하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 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