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의 차이

내가 침묵하면 생각이 깊은 것이고
남이 침묵하면 아무 생각 없는 것이다.

내가 늦으면 피치 못할 사정 때문이고.
남이 늦으면 정신자세가 덜 되었다 한다.

내가 화를 내면 소신이 뚜렷한 것이고
남이 화를 내면 인간성이 부족한 것이다.

내가 통화 중이면 업무상 긴급한 것이고
남이 통화 중이면 사적인 것으로 여긴다,

내가 회의 중이면 남은 잠깐 기다려야 하고
남이 회의 중이어도 나는 즉시 만나야 한다

나의 생각은 창조적이며 혁신적인 것이고
남이 해낸 것은 뜬 구름 잡는 것이라 한다.

내가 약속을 어기면 어쩌다 그럴 수 있는 것이고
남이 약속을 어기면 사람이 그럴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아프면 일로 인한 피로 때문이니 쉬어야 하고
남이 아프면 기본 체력이 의심스러운 것으로 안다,

나쁜 마음을 가지고 말하거나. 행하면 괴로움이 따르리니. 마치 소와 말 걸음에 수레 바퀴가 따르듯 하리니. 마음은 모든 것을 다스리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루어집니다,


좋아지는 사람을 발견하고 만나고 사귐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곁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한 미소가 흐르지요.
이런 기쁨이 날마다 더 깊은 사귐으로 이어지고 더 많은 이들을 좋아하고 싶어집니다.

틈날 때마다 책을 읽는 사람
잘못 걸린 전화에도 친절한 사람
비싼 옷이 아니더라도 늘 단정한 사람
얼굴에서 훈훈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 사람
언제나 마음이 따스하여 대하기 편한 사람
늙어도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깨끗한 사람
어느 자리에서나 맡은 일에 열중하는 사람
만날 때마다 먼저 즐거운 인사를 하는 사람
잘못한 걸 알면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는 사람
전화를 잘못 걸고 미안하다고 사과할 줄 아는 사람
남에게 말 한대로 자기도 그렇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
조그마한 호의에도 고맙다는 인사를 할 줄 아는 사람
자기보다 못한 사람 앞에서도 목에 힘을 주지 않는 사람
때로는 손해를 보고서도 생색내거나 소문내지 않는 사람
한 포기의 들풀 한 송이의 야생화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
차를 운전하고 가면서 양보 받았을 때 손을 흔들어 주는 사람
식당에서 내돈주고 사 먹지만 직원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람
오늘도 살아 있음을 호흡이 남아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람

희망입니다

내 손에 펜이 한 자루 있다면 그것은 희망입니다.

그 펜으로 글을 쓸 수 있고 그림을 그릴 수 있고 편지도 쓸수 있으니까요.

내 입에 따뜻한 말 한마디 담겨 있다면 그것은 희망입니다.

그 말로 남을 위로 할 수 있고 격려할 수 있고 기쁘게 할수 있으니까요.

내 발에 신발 한 켤레가 신겨져 있다면 그것은 희망입니다.

그 발로 집으로 갈 수 있고 일터로 갈 수 있고 여행도 떠날 수 있으니까요.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다면 그것은 희망입니다.

그 눈물로 가난과 슬픔으로 지친 이들의 아픔을 씻어 낼 수 있으니까요.

내 귀에 작은 소리 들려 온다면 그것은 희망입니다.

나에게 꼭 필요한 말과 아름다운 음악과 자연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으니까요.

내 코가 향기를 맡는다면 그것은 희망입니다.

은은한 꽃 향기와 군침도는 음식 냄새와 사랑하는 이의 체취를 느낄 수 있으니까요.

내 곁에 좋은 친구 한 사람 있다면 그것은 희망입니다.

그 친구에게 내 마음 털어 놓을 수 있고 지칠 때는 기댈 수 있고  따뜻한 위로도 받을 수 있으니까요.

내 가슴에 사랑 하나 있다면 그것은 희망 입니다.

마음 가득 사랑이 있다면 기쁨과 행복한 세상일테니까요.


살아온 세월은 아름다웠다고 비로소 가만 가만 끄덕이고 싶습니다.

황금 저택에 명예의 꽃다발로 둘러 싸여야 만이 아름다운 삶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길지도 짧지도 않았으나 걸어온 길에는 그립게 찍혀진 발자국들도 소중하고 영원한 느낌표가 되어 주는 사람과 얘기거리도 있었노라고...

작아서 시시하나 안 잊히는 사건들도 이제 돌아 보니 영원히 느낌표가 되어 있었노라고...

그래서 우리의 지난 날들은 아름다웠다고... 앞으로도 초조하지 않고 순리로 성실을 다하며 작아도 알차게 예쁘게 살면서...

이 작은 가슴 가득히 영원한 느낌표를 채워 가자고 그것들은 보석보다 아름답고 귀중한 추억과 재산이라고 우리만 아는 미소를 건네 주고 싶습니다.

부자는 못 되어도 일등은 못 했어도 출세하지 못했어도 고루 고루 갖춰 놓고 살지는 못해도 우정과 사랑이 내것이었듯이 아니 나아가서 우리의 것이듯이 앞으로도 나는 그렇게 살고자 합니다.

당신이 내 가슴에 영원한 느낌표로 자욱져 있듯이 나도 그대 가슴 어디에나 영원한 느낌표로 살아있고 싶습니다.

삶을 요리하는 법

먼저 크고 깨끗한 "마음" 이라는 큰 냄비를 준비한 후 냄비를 "열정"이라는 불에 달굽니다.

충분히 달구어지면, 자신감이라는 것을 교만이라는 눈금이 안보일 만큼 붓습니다.

자신감이 잘 채워지고 나면, 성실함과 노력이라는 양념을 충분히 넣어 줍니다.

"우정"이라는 양념을 어느 정도 넣어 주면 훨씬 담백한 맛을 낼 수 있으니 꼭 잊지 말고 넣어 주세요.

약간의 특별한 맛을 원할 경우, 이성간의 "사랑"을 넣어 주면 좀더 특별해집니다.

이 사랑이 너무 뜨거워지면 집착이라는 것이 생기는데 안 생기도록 불 조절을 잘 해야합니다.

만약 생길 경우는 절제라는 국자로 집착을 걷어 내도록하십시요. 이때, 실패하면 "실연"이라는 맛이 나는데. 이 맛은 아주 쓰디 서서 어쩌면 음식을 망칠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이 쓴맛을 없애고 싶을 경우, 약간의 용서나 너그러움 그리고 자신을 뒤 돌아 볼 수 있는 여유로움을 넣음으로 어느 정도는 없앨 수 있습니다.

이때 말끔히 없애지 않으면 상처"라는 맛이 남게 됩니다. 그리고 "눈물"이라는 것이 많이 생기는데 넘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깊은 맛을 원할 경우는 약간의 선행과 관용을 넣어 주면 됩니다. 가끔 "질투 " 욕심" 이라는 것이 생기는데 계속 방치해 두면 음식 색깔이 타게 되므로 그때 그때 제거 합니다.

또한 권태라는 나쁜 "향"이 생기는데 그 냄새를 "도전"과 의욕"이라는 향료를 넣어서 없애 줍니다.

이쯤에서 만약에 "삶" 이라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 힘들어 지치게 되서 포기하고 싶어지면."신앙" 이라는 큰 재료를 넣어 주면 새로운 맛과 향을 느낄수 있게 될것입니다.

그것을 알게 되면 "기쁨"이라는 맛이 더해 가는데. 그 맛이 더 해져 잘 어우러지면 진정 자유라는 맛이 생기게 됩니다.

그 후에 "평안과 감사" 함이라는 행복한 향이 더 해짐으로 음식의 완성도는 더 높아 집니다.

이 향은 아주 특별한 것이라서 사랑하는 이웃에게 베풀어 주고 싶게 됩니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요리는 끝난 편입니다. 마지막으로 진실이라는 양념을 한 후 한소큼 끓인 후 간을 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 사랑 "이라는 소스를 충분히 뿌려 주면 이 모든 맛이 더욱 어우러져서 정말 맛있고 깊은 맛이 나는 삶이라는 음식을 맛 볼 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더 많은 재산이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재산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 것만은 아니지요

오히려 너무 많은 재산이 있으면 행복보다는 불행에 빠지기가 더 쉽습니다.

우리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신이 계획했던 일들을 이룰 때 느끼는 성취감 기쁨 이런 감정들이 바로 그런 행복입니다.

행복은 돈이 많다고 해서 느낄 수가  있는 값싼 감정이 아닙니다. 결단코 돈으로 살 수가 없지요.

진정한 행복은 힘든 시련 속에서도 묵묵히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그러한 노력속에 있지요.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보이는 것은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침묵을 배우자

사랑하고 사랑 받는다는 것은 태양을 양쪽에서 쪼이는 것과 같다.
서로의 따스한 볕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성을 잊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태양이 되자.
그리하여 영원히 마주보며 비추어 주자.
그대의 운명을 사랑하라.
어떤 운명이든지 간에 항상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한쪽 얼굴은 어둡고 우울하며 다른 한쪽 얼굴은 따뜻하고 밝다.
어두운 얼굴을 가리고 밝은 얼굴을 택하여 그것 만을 눈 여겨서 바라 보라.
그것이 험한 운명의 바다를 노저어 가는 항해술이다.
현명한 사람이 되려거든 사리에 맞게 묻고, 조심스럽게 듣고, 침착하게 대답하라.
그리고 더 할 말이 없으면 침묵하기를 배워라.
사랑한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그 순간 가슴이 벅차 오르는 것만으로 할 수도 있지만,
사랑이라는 마음을 주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과 아픔과 어둠까지도 껴안을 수 있는 넉넉함을 간직했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 우리는 중요하지 않게, 다복하지 않게 태어났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일어난 일을 어떻게 받아 들이는 가에 있다.

물 위에 글을 쓸 수 없다.
물의 본성은 흐르는 것이다.
물 속에서는 조각도 할 수 없다.
우리의 성난 감정은 바로 이 물처럼 다루어야 한다.
사랑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 존재하지 않고,
우리가 고뇌와 인고 속에서 얼마나 강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존재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만일 내가 어떤 사람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을 통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세계를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나 자신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이 시작될 때, 사람은 가장 행복하다.
그때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으며, 사랑에 대한 순수한 기쁨만으로 충만해 있다.

세상의 첫째 조건은 그 마음의 순결함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견딘 시련들이야 말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승리이다.

위대한 사람들이 처음부터 영광의 월계관을 쓰는 일은 극히 드물다.
종종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힘은 경험과 역경을 통해서 자라난다.
- 글/앨런 코헨 -


우리 살아가는 길 위에서 즐겁고 기쁜 일을 만나게 되면 가슴 뿌듯한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길을 가다가 눈에 보여지는 모든 것들에게서 늘 새로움의 생동감을 얻음도 마찬가지

그러나 날마다 즐거움을 만날 수 없고 눈에 보여지는 모든 것들이 다 생동감 넘치는 행복일 수는 없습니다.

순탄한 길이 어디있던가 가다보면 때론 힘든 고갯마루에 앉아 눈물을 흘릴 때도 있는 법이고...

까닭 모를 서러움에 목이 매는 것은 육신이 지쳐있어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힘들땐 쉬어 가세요.

쉼터에 앉아 눈물을 훔쳐내고 나면 움쿠려 닫힌 마음은 크게 열리고 생각지도 않았던 새로움의 길이 보입니다.

인생은 쉼이다. 가끔은 지금 그 자리에 앉아 쉬며 온 길을 돌아 볼 일입니다.

발아래 까마득한 저 길 많이도 오지 않았는가. 내가 온 길 위에 진리가 있었음을 알겠는가.

그러기에 즐거움만 찾지 말고 불행까지도 사랑해야 합니다.

아픈 눈물을 닦은 후에야 문득 새로움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열고 눈을 크게 뜨라 행복은 닫힌 마음 안에 고스란히 숨어 있을 뿐입니다.

눈물을 거두고 마음을 열어라.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시간은 짧다. 남은 길 어찌가면 좋을지 보이지 않는가.

마음의 기도

아침에 눈을 뜨면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내 앞에 놓인 새로운 하루가 감사하다고 말입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어제는 말끔히 잊어 버리고
새로운 출발선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낍니다.

비록 내가 힘들더라도 소외 되고 지치고 병든 사람이
편안하게 기댈 수 있도록 미소를 잃지 않도록 하여 주시고

세상이 내 마음에 안들고 비록 험하고 온갖 악으로 가득
차더라도 언제나 아름답고 맑은 눈으로 바라 보게 하여 주시고

나의 허물과 잘못된 판단과 결정으로 다른이에게 상처주지 않게 하여 주시고
항상 옳바른 생각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하여 주소서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상형문자에 따르면 아이들의 마음은 세모 어른의 마음은 동그라미랍니다.

그래서 어린이가 죄를 지으면 마음이 아픈 이유는 세모꼴 양심이 죄를 짓는 만큼 회전하면서 뾰죡한 모서리로 마음을 긁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답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모서리가 점점 닳아져 동그랗게 변하고 그래서 어른이 되면 잘못을 범해도 별로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

솔직하고 정직했던 젊은이가 나이가 들면서 양심의 가책을 잘 느끼지 않는 무딘 사람으로 변하는 것을 의미 한답니다.

말투와 그릇

같은 말도 듣기 싫게 하는 사람이 있다.
어투가 퉁명스럽거나 거친 용어를 사용하거나
목소리가 유난히 공격적일 때 그런 느낌을 준다.
그러나 말투가 좋지 않으면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전혀 다른 의미로 변질된다.

당신이 좋은 말도 퉁명스러운 말투로 하면
듣는 사람은 "나한테 화가 낫나?"라고 오해할
수 있다. 당신의 거친 말투는 당신의 의도와
다르게 "나를 겁주려는 것일까?"라는
메시지로 변하기 때문이다.

말이란 내용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방법도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당신이
속마음과 달리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한다면
당신은 주변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을 것이다.

남편인 당신이 결혼 전과 달리
결혼 후 퉁명스러운 말투를 사용한다면
아내는 당신의 애정이 식었다고 오해할 수 있다.

상사인 당신이 부하 직원을 아끼면서도
욕을 섞어 거칠게 말하면 부하 직원은 당신의
의도를 정확하게 해석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장성한 자녀인 당신이 연로하신 부모님의 건강을
 걱정한다며 "담배 좀 그만 피우세요. 큰일나고
싶으세요?"라고 화난 목소리로 말하면 부모님은
당신이 자신의 건강을 염려한다고 생각하는 대신
"내가 나이가 들어서 자식 간섭이나 받는다"라는
슬픔에 빠질 것이다.

따라서 당신은 칭찬할 때와
꾸짖을 때. 걱정할 때와 간섭할 때 등
경우에 따라 말투를 달리해야 한다.

말투란 말을 담는 그릇이다.
물을 어떤 모양의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세숫물로 보이기도 하고 먹는 물로 보이기도
하듯 말투는 그 나름대로 독립된 의미를 지닌다.


세상 살면서 어찌 나를 싫어 하고
질시하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내가 잘 나가던 못 나가던 질시
하거나 질타하는 이웃은 있습니다.

그 문제를 잘 헤아리는 지혜가 그 사람의
인생의 길을 결정 해주는 지표인 것입니다.

사람들의 심보는 대개가 남을 칭찬하는
쪽보다 남을 흉보는 쪽으로 치우쳐져 있습니다.

그 치우쳐져 있는 것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
교육이요 수련이며 자기 성찰인 것입니다.

그 모든 수단들이 자기에게 도전하는
적을 없애는 좋은 방법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이렇게들 말하지요.

백명의 친구가 있는것 보다 한명의
적이 무섭다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백명의 친구가 나를 위해 준다 해도 마지막
한명의 적이 나를 무너 뜨리기엔 충분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는 것을 뒤돌아 보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강하고 세다고 보잘것 없는 사람들
무시했다간 언젠가는 내 앞에 강한 사람이
서있게 된다는것그것은 거짓 없는 현실입니다.

오늘 하루 어쩌다가 행여 매듭이 만들어진
부분이 있다면 반드시 풀고 가십시요.

오래 도록 풀지 않고 있으면 훗날
아주 풀기 힘든 매듭이 될수 있습니다.

불행한 사람


이 남자는 한때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으로 불렸다.

그의 어머니는 사생아로서 마을에서 손가락질을 당했다.

그는 네살 때 동생의 죽음을 보았다.

아홉살 때 어머니, 열여덟살 때 사랑하는 여동생의 죽음을 보았다.

그의 아내는 거의 정신 이상자 였으며 두 아들도 그의 품에서 죽었다.

그는 전쟁에 참가 했다가 친구들의 죽음을 무수히 목도했다.

이 사람은 정치에 나섰으나 연거퍼 낙선의 고통을 겪었으며

그의 인생은 온통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고난의 세월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과 인간의 존엄성을 깨달았다.

그는 항상 청중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

또한 주인이 되고 싶지도 않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한 존재다”

이 사람의 이름은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의 16대 대통령의 이름이다.

그는 고난과 아픔을 인생의 귀중한 자산으로

삼아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로 손꼽힌다.


채워짐이 부족한 마음 완벽 하고픈 생각의 욕심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고 부족하다고 생각 합니다.

나 자신만은 완벽한것 처럼. 말들을 하고 행동들을 합니다.

자신들만은 잘못된 것은 전혀 없고 남들의 잘못만 드러내고 싶어 합니다.

남들의 잘못된 일에는 험담을 일삼고 자신의 잘못은 숨기려 합니다.

그러면서 남의 아픔을 즐거워 하며. 나의 아픔은 알아주는 이가 없어 서글퍼 하기도 합니다.

남의 잘못을 들추어 내며. 허물을 탓하고 험담을 입에 담는다면 남들도 돌아서면

자신의 허물과 험담이 더욱 부풀려져 입에 오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조금은 부족한듯이 마음을 비우고 조금만 덜 채워지는 넉넉한 마음으로

조금 물러서는 그런 여유로움으로 조금 무거운 입의 흐름으로

간직할수 있는 넓은 마음의 부드러움을 느끼며 살아갈 수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은 앎이 아니라 삶입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린도 후서 6:9~10)

어느 달동네 꼭대기 쯤에 나이 많으신 할머니 한분이 사셨습니다.
지독하게 가난하고 보듬어 줄 사람도 없지만 할머니는 늘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삶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그런데 그 할머니의 아름다운 믿음에 대한 소문은 달동네 마을은 물론. 지역 전체로 퍼지기 시작 했습니다.
할머니에 대한 소문을 들은 지역 목사님들이 모여 그 할머니를 방문하여 어떻게 그렇게 충만하게 사시는 가를 알아 보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목사님들이 할머니에게 필요한 이것 저것을 준비하여 할머니가 사시는 곳을 찾아 갔습니다.
마침, 할머니는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찬송을 흥얼 거리시며 손 빨래를 하시고 계셨습니다.
목사님 중에 한분이 물었습니다."할머니! 할머니는 뭐가 그렇게 감사하고 행복하세요.?

"혹시 예수님이 다녀 가시기 라도 하셨나요?" 할머니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게 아니라는 뜻이었습니다. 목사님들이 할머니께서 잘 못 들으셨는가 해서 재차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할머니! 예수님이 다녀 가셔서 그렇게 좋으신 거예요? "그러자 할머니는 허리를 펴시고 일어 서시며 아니야, 예수님이 다녀 가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지금 나와 함께 살고 계셔! " 목사님들은 그제야 할머니가 그렇게도 최악의 상황속에서도 감사하며 충만하게 사시는 이유를 알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앎이 아니라 삶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하여 알고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에 대하여 많이 말한다고 하여 잘 믿는 것은 아닙니다.
앎과 삶은 비례 하지 않습니다. 지금 많이 힘드시고. 많이 낙심이 되고, 많이 죽고 싶을 정도로 어려우십니까?
혹시 주님과 별거 중은 아니신지요? 반대로 예수님은 생각만 해도 기절할 정도로 좋고 신나고 행복하십니까?

그렇다면 상황이야 어떻든 주님이 당신속에 살고 계신 중입니다. 주님의 관심은 앎보다 삶이며. 일보다 관계이며 모든 인류보다 당신의 영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앎으로 충만한 1000명보다 달동네 할머니 한분을 더 애타게 찾고 계실 것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사시므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할 정도의 영성과 믿음이라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들 어찌 찬양 안할 수 있습니까?
그분으로 인하여 최고의 부자이니까요. 할렐루야!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세상의 많은 것들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견주지 않게 하 옵소서.
혹시나 행여 견주게 되어도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선택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 옵소서.
저희의 삶이 오직 주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찬양하며 자족하고 감사하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 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그리운 이름하나

내게는 늘 그리운 사람이 있습니다.
눈을 감아도, 뒤를 돌아서도 보여지는 늘 마음
생각을 가득 채우는 그런 사람이 내게는 있습니다.

이렇게 흐린 날이면 더 생각 나는 사람입니다.
그리움이라는 말로 언제나 다가와 머무는 사람입니다.

때론 잊으려 했습니다.
때론 숨으려 했습니다.
때론 발길 돌리려 했습니다.
그래도 잊지 못할.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애태우기를 몇 날
눈물짓기를 몇 날
소리쳐 보기를 몇 날
그래도 지워지지 않는 한사람이 있습니다.

어쩌면, 평생 못 잊고
가슴에 묻어야 할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그냥 떠밀기엔 너무 마음이 아파 평생을
가슴에 묻어야 할 그런 사람이 내겐 있습니다.

그래서
그래도
나 슬프지 않습니다.
그리움으로 다가온 그 사람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깊이 새겨둔 그리운 사랑의 흔적입니다.
그 사람이 오늘은 왠지 너무 너무 보고 파 집니다.
오직 나의 주

인생은 여행입니다.
여행을 하는 사람은 설렘을 가진 행복한 사람입니다.
세상에는 여행하는 사람이 적고 방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행하는 사람은 자신이 가는 목표를 정확하게
알고 있고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지 정확하게 압니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방향을 잃어
버리고 목표도 없다면 그것은 여행이 아닙니다.
방황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내가 사람답게 사는 게 맞아?
우리는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이라면 뭔가 달라야 할 텐데 그냥 태어나고 죽는
것이 인생이라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